이번달에는 게임회사 Nexon America에서 Senior Software Engineer 일하고 계시며 미주 한인 여성 직장인 네트워킹 그룹 PKWON의 회장을 맡고 있는 정미주님의 커리어 여정과 커뮤니티 설립 스토리를 들어봅니다.
1.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LA에 있는 Nexon America에서 Back-end Software Engineer로 일하고 있는 정미주라고 합니다.
Nexon America는 미주와 유럽을 포함한 웨스턴 지역을 타겟으로 PC게임 및 모바일 게임들을 서비스하고 있는대요. 저는 넥슨 아메리카의 플랫폼실 엔지니어로써 게임 디벨로퍼들의 게임 퍼블리싱 및 유저들의 게임 플레이를 위한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Professional Korean Women’s Network 라는 미주 한인 직장인 여성 그룹의 회장도 맡고 있습니다. Professional Korean Women’s Network 은 줄여서 PKWON(프콘)이라고 부르는대요, PKWON은 미국내 한인 직장인 여성들의 연대와 네트워킹 그리고 커리어 협력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영리 커뮤니티 그룹입니다.
2. 어떤 경로로 미국 취업에 성공하셨는지요?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 클라이언트사 한 곳으로 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의 법인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는지 제안을 받게 되었는대요, 당시 저는 오래 전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꿈을 꾸어 왔었기 때문에 그 제안에 빠르게 승낙하고 승낙한지 불과 한달만에 달랑 트렁크 가방 두 개를 가지고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3. 자기 소개 중 언급하신 Back-end Software Engineer는 어떤 일을 하나요?
게임 플랫폼은 게임 유저들이 런쳐를 통해 원하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기능을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어플리케이션은 크게 front-end와 back-end로 구성이 되어 있는대요, 사용자가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을 통해서 마주하게 되는 깔끔한 레이아웃의 인터페이스를 프론트엔드라고 하고요, 백앤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버단에서 작동하는 기능들로, 프론트엔드에 있는 사용자들이 취하는 액션들을 처리하고 데이타베이스에 자료들을 저장하고 또 서버 투 서버 작업들을 처리하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그 백앤드에 관련된 기능들을 개발하는 사람이 백앤드 엔지니어이고요 저는 Golang, Scala, Python 같은 프로그램 랭귀지를 이용해서 넥슨 게임 플랫폼의 백앤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4.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시게 된 이유는요? 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저는 98년도에 대학생활을 시작했는대요, 한국에서 IMF가 터진 직후의 학번이기 때문에 당시의 분위기는 취업이 잘 되고 먹고 살기에 걱정이 없는 전공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또한 그 당시는 세계적으로 닷컴붐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컴퓨터 공학은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전공이었고 사실 저도 그 분위기에 따라 컴퓨터 공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선택한 전공과는 다르게 수업은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고 그래서 공부보다는 동아리 활동들이 더 재밌었던거 같아요. 연극동아리, 합창단, 동아리연합회 회장까지 하면서 공부 빼고는 다 열심히 잘 하는데 정작 공부는 엉망이었죠. 그렇게 졸업반이 가까워지는데 졸업을 해도 이 전공으로 직업을 구할 엄두도 안나고 슬슬 취업에 대한 걱정을 하던 중, 학교에서 인도로 학생들을 보내 그곳에서 영어로 컴퓨터 수업을 이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취업걱정에 마침 어디론가 도피를 하고 싶었던 저는 그렇게 인도로 도피 유학을 떠나게 됐습니다.
5. 인도에서의 공부는 어땠나요?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Bangalore라는 도시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는 숙제를 하고 시험 공부를 하고 그렇게 꽉찬 일년을 보내게 되는대요, 이 또한 쉽게 결정한 유학이었지만 실상은 쉽지 않았죠. 컴퓨터 수업 조차도 어려운데 헬로우 하와유 밖에 못하는 제가 영어로 수업을 따라가자니 보통 어렵고 힘든게 아니었는대요, 하지만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 내가 이번엔 진짜 열심히 한 번 해보자, 뭐 해보면 되겠지” 라고 마음을 먹고 한국의 담당 교수님에게 “저 1등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라고 무대포 메일을 보낸 후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년 후에는 “아, Java가 이렇게 재밌는 거야?”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프로그래밍에 재미가 붙었고 여전히 떠듬떠듬한 영어였지만 이제는 내가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개발자로 먹고 살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에 꽉 차 있었습니다. (웃음)
6. 인도의 생활은 어땠나요? 첫 외국생활 인도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였나요?
20년전 저에게 인도는 부끄럽지만 카레 정도 밖에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미지의 나라였습니다. 심지어 저희 아버지도 제가 인도로 유학을 가겠다고 하니까 미국 영국도 아니고 인도에서 대체 뭘 배운다는 거냐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무지했죠. 그런데 그렇게 가게된 인도는 저의 상상을 초월해서 자연, 문화, 기술 모든 면에서 너무나 굉장한 나라였고 저는 그 매력에 푹 빠져서 정말 인도 현지인 못지 않게 완벽하게 적응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인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주 열정적으로 컴퓨터 공부를 하는 수많은 인도 청년들이었는대요, 그 모습이 저에게 인생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2000년 초반 당시만 해도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저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낯선 곳이었고 반도체 관련 하드웨어 회사들이 있는 곳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는 수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일하고 있고, 높은 연봉과 좋은 대우로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는 엔지니어들의 꿈의 도시였던 것이였죠. 이미 당시의 인도 학생들과 청년들은 목표를 인도내의 회사에만 두지 않고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었고 이는 유학은 왔지만 해외 취업은 생각하지 못했던 저에게 실리콘밸리라는 꿈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총 2년을 있었는데 일년은 공부하고 반년은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나머지 반년은 여행을 다녔습니다. 북쪽 히말라야에서 부터 땅끝마을 깐야꾸마리까지 동서남북 신나게 여행을 다녔죠.
한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여행, 회사생활, 영어, 공부, 독립생활 등은 제가 향후 인생을 살면서 좋은 밑거름이 되어 주었습니다. 강인한 정신력과 도전정신, 생활력 같은 것이랄까요.
7. 커리어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죠. 남성 비율이 높은 인더스트리에서 여성 엔지니어로서 일하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여성 엔지니어로써 일하는게 어떠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사실 엔지니어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냥 똑같은 엔지니어에요. 여성이기 때문에 더 특이할 것도 특별한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는 남성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여성 엔지니어는 많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소수 성별 입장에서의 직장생활에 대해서는 얘기해줄 수 있을거 같아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스스로가 여성이라는 틀에 갇히지 말고 본인의 원래 모습 그대로. 소신있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사회 생활하는게 도움이 되었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막연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남자비율이 높은 직장에서 여성으로 살아남으려다 보면 자칫 여성성을 더 내세우게 되거나 아니면 남자들과 동화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될 수가 있는대요, 그렇게 주위 환경에 나의 스타일과 심지어 정체성을 맞추려고 하다보면 지쳐서 롱런하기가 힘들고 잘못하면 내가 여성임에도 같은 여성 동료들을 적대시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힘을 빼고 편안하고 소신있는 마음으로 직장생활에 임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8. 보통 유학을 통해 미국 취업을 하는데 직장생활 중 미국 취업 도전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국에 가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제가 인도에서 실리콘 밸리 취업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인도 친구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처음 갖게 되었고요,
인도에서 돌아와 취업을 할 당시 한국은 많은 사람들이 IT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던 때였지만 막상 현실은 3D 직업이라고 부를 정도로 청년 IT 업무 환경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밤을 새는 것은 물론이고 박봉에, 서른살만 넘어도 내가 계속 개발자로 직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하는 현실이었죠. 물론 지금은 굉장히 많이 좋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의 엔지니어들은 나이 정년도 없고 머리 하얀 할아버지들도 코딩을 한대, 야근도 없고 대우도 굉장히 좋대” 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당시 뉴스에서 매일같이 접하는 구글의 검색이나 구글어스 같은 놀라운 서비스들애 대한 기사들을 보면서 아 나도 한 번 큰 무대에서 활약해보고 싶다라는 꿈을 계속 꾸게되었죠.
하지만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게 됐는대요, 정말 잠잘 시간 없이 회사일을 하면서 그런 저의 꿈을 실현시킬 여유가 없었죠. 그럼에도 그 꿈의 끝자락이라도 잡고 있고 싶은 심정에 주중에는 새벽 영어학원, 주말에는 영어과외를 받으며 언제든 기회가 오면 미국으로 간다라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미국 실리콘밸리에 법인에 엔지니어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받고 고민도 없이 “네 제가 가겠습니다!”하고 바로 떠나게 되었죠.
9. 미국 생활 초기 생존담을 들려주신다면요?
미국행은 고민도 없이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왔지만, 늘 그렇듯이 현실은 녹록치가 않았습니다. 일단 제가 여행이나 공부하려고 온게 아니라 월급 받고 일하러 온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를 준비시켜 주거나 그런거 없이, 말그대로 도착한 다음날 부터 밥값을 해야 하는 상황이 었기 때문에, 저의 초기 미국 생활은 말그대로 서바이벌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힘들었던 점은 일단 영어죠. 한국에서 뭐 열심히 학원도 다녔다고 하지만 막상 미국에 오니 제 영어는 아무것도 아니고 출근 첫날 첫 미팅부터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정말 진땀이 날 정도로 막막했던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같은 회사에 계신 한국분들을 정말 귀찮게 많이 했죠. 미팅때는 그 분들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지금 뭐라고 하는 거에요? 이 말이 맞아요?”라며 통역을 부탁할 정도로 정말 지금생각면 그런 민폐가 없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당시 절 도와주셨던 한국분들에게 마음 깊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미국에 왔던 2008년도에는 그 유명한 세계 금융 위기가 있었던 때였는대요, 그 위기는 실리콘밸리도 마찬가지였고 하루 아침에 수백명 수천명이 회사에서 레이오프 되서 직장을 잃고 집도 잃고 매우 좋지 않은 분위기였어요.
그나마 다행히 게임 산업은 경기를 크게 타지 않아 그 무서운 레이오프 바람에서는 버텨낼 수 있었지만 제가 미국 취업에 대한 현실을 생생히 느낄 수가 있었던거 같아요. 이유불문 언제든 하루아침에도 짤릴 수 있다. 직장을 잃으면 의료보험조차도 유지하기 어려워 진다. 높은 페이먼트, 렌트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집에서 조차 쫓여날 수가 있다. 이런 것들이죠.
그래서 그 경험에서 배운것은 job은 회사의 것이고 career가 나의 것이다. 취업이 목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계속해서 나의 커리어를 쌓아가야 한다. 그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야한다라는 것을 깨닫고 그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10. 커리어 개발을 위해 노력중인 것은 무엇인가요?
엔지니어로서 커리어 개발이라고 하면 일단 실력, 기술이죠. 최신 기술들을 빠르게 습득하고 적용하고 성과를 내고. 소프트웨어 쪽은 진짜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끝없이 공부해야하고 노력해야하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퇴근후 저녁에 쥬니어칼리지에서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기본기를 다시 다지기도 했고요 다른 엔지니어분들과 기술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서 같이 꾸준히 공부도 하고. 세미나나 컨퍼런스도 참석해서 최신 기술에 대한 트랜드도 접하고 만나는 사람들로 부터 좋은 자극도 받으며 그렇게 커리어 개발을 위해서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분야 혹은 전혀 다른 분야에 계신 한인 직장인 분들을 많이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 분들은 어떻게 커리어를 개발시키고 계신지에 대한 노하우도 듣고 제가 몰랐던 분야에 대한 안목도 넓히고, 또 필요할때 잡리퍼럴도 부탁드릴 수 있고. 다방면에서 인맥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11. PKWON 그룹을 엘에이 베이스로 어떻게 설립하게 되었나요?
미국 일자리의 70-85%가 추천이나 네트워킹을 통해 채워진다는 통계데이타가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이직을 할 때 추천과 네트워킹은 아주 중요한 요소인대요, 실제로 제가 이직을 준비할때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도 인터뷰 기회조차 잡는게 정말 쉽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지인을 통해 추천을 받아 지원하게 되면 인터뷰 기회를 얻을 확율이 정말 높아지기 때문에 이 추천, 그리고 추천을 받기 위한 네트워킹은 저같은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참 중요한 것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엘에이에 있는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남가주로 이사를 오게되는대요, 엘에이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인맥 불모지인 거에요. 그래서 제가 이곳에 와서 제일 먼저 했던게 한인 직장인 네트워킹 그룹을 찾는 거였어요. 이왕이면 같은 여성 직장인 그룹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꼭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직군의 분들을 만나서 다양한 면에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막상 딱 맞는 그룹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그냥 내가 만들어보자.” 그렇게 PKWON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12. 5년차에 접어든 PKWON 자랑 좀 해주세요
5년차가된 PKWON은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의 회원이 340명이 넘었고요, 그 분들 모두가 남가주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한인 여성 프로페셔널들 이십니다.
PKWON 그룹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한인 여성들의 커리어 성장을 위한 인맥 풀을 만들고 그를 위한 네트워킹 장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인대요, 인맥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PKWON 은 브런치 믹서나 세미나 같은 정기적인 이벤트나 직군 소그룹 모임, 스터디 모임 같은 것들을 통해서 회원 분들이 인맥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만들어진 관계로, 채용 공고도 공유하고 잡 리퍼럴도 부탁하고, 인터뷰 팁도 알려 주면서 아주 긴밀하게 커리어 적으로 서로 돕고 끌어주고 계시고요, 또 우리가 한인 여성으로써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이나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조언해주며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직군의 분들이 모여 계시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쉽게 조언을 얻을 수 있고 또 워킹맘들을 위한 소그룹에서는 육아나 교육, 생활 밀착형 정보까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룹에 계신 분들의 만족도가 높고 계속해서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시는 그룹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13. 코비드 사태과 관련 모임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그룹을 운영하면서 단순히 회원이 많은 그룹 보다는 진짜 내가 도움이 필요할때 받을 수 있는 긴밀한 네트워킹을 위한 그룹을 원했기 때문에 저희 PKWON 그룹은 코비드 전까지는 오프라인 모임에 중점을 두었어요. 직접 만나서 얼굴보고 이야기 나누어야 관계가 만들어진다 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코비드로 만남이 어려워진 상황이 되고 과연 우리 그룹이 잘 운영될 수 있을까도 걱정을 했습니다.
모든 이벤트를 버츄얼 화상 이벤트로 전환하고 오픈 채팅방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러자 오프라인 모임때는 나오지 못하시거나 활동이 없어 보이시던 분들도 오픈채팅에서는 적극적으로 대화하시고 참여하시는 게 보이는 거에요. 오히려 직접 만나서 관계를 쌓아야 한다는 strong link 부담에서 벗어나 소셜미디어나 오픈채팅을 통한 soft link 로 더 많은 분들이 부담없이 참여하고 계시고 그것이 우리가 네트워킹을 하는데 질적으로 부족하지 않다라는 것을 배우게 됐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오픈채팅을 워킹맘그룹, 지역그룹, 직군그룹 같이 여러 소그룹 채팅방도 운영을 하고 있고요 한달에 한번 회원님들 커리어 인터뷰를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고 줌미팅을 통해 실용 웨비나 부터 커리어 코칭까지 다양한 주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14. PKWON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PKWON이 5년차를 맞으면서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기 때문에 초기에 목표로 했던 인맥풀, 정보 교환, 커리어 네트워킹은 어느정도 달성을 한거 같아요.
현재 그룹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그룹내에 계신 정말 훌륭한 우리 한인 여성 프로페셔널들을 널리 알리고 그로 인해 다른 한인 여성분들이나 많은 분들이 좋은 영향을 받고, 더불어 우리의 위상도 높일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아가 PKWON이 우리 한인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 그룹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 정미주님 이메일: mijoo.jung@gmail.com
- PKWON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kwonus
- PKWON 이메일: pkwon.us@gmail.com



















